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양보하지 마세요
글쓴이 : 이호수   날짜 : 14-02-16 11:31  
조회 : 2,474
 

 
김여환
대구의료원 완화의료 센터장
E-mail : dodoyun@hanmail.net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암환자의 고통을 함께하는 호스피스, 완화의료 센터장이자 가정의학과 전문의.

의과대학에 다니던 중 결혼을 하면서 공부를 중단했던 그녀는 졸업 후 13년, 서른아홉 살이라는 늦은 나이에 다시 공부를 시작했고 가정의학과 수련 과정 중 암성통증(암 환자가 겪는 통증)으로 고통스럽게 삶을 마감하는 환자를 보며 호스피스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이후 국립암센터에서 호스피스 고위 과정을 수료, 2008년부터 지금까지 대구의료원 평온관에서 호스피스 의사로 일하고 있다. 의학박사나 가정의학과 전문의 등의 의학 지식보다 13년 동안 전업주부로 살아온 시간이 호스피스 활동에 더 도움이 된다는 그녀는 죽음 앞에서도 환한 웃음을 짓는 호스피스 환자들의 모습을 담아 사진 전시회를 여는가 하면, 항암 요리를 만들어 환자의 가족들에게 선사하기도 하는 등 무채색의 호스피스 병동을 ‘컬러풀 호스피스’ 병동으로 바꾸어가고 있다.

5년 동안 800여 명의 환자에게 임종 선언을 해오면서도 여전히 죽음에 담담해질 수 없다고 말하는 그녀는, 그러나 불편하더라도 삶을 완성하는 마지막 순간을 잃지 않기 위해, 그리고 지금 이 순간을 제대로...살아내기 위해 ‘죽음’을 공부해야 한다고 말한다.

2009년 국가암관리사업평가대회 호스피스부문 보건복지부장관상을, 2011년 국립암센터 호스피스 사연공모전 우수상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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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본 기사는 프리미엄조선에서 작성된 기사 입니다
기사입력 : 2013.12.07 04:29

필자인 대구의료원 호스피스병동 평온관의 김여환 센터장
필자인 대구의료원 호스피스병동 평온관의 김여환 센터장
 
“공부에 익숙해질만 하니까 졸업이네요”라고 한 대학생이 졸업식에서 말했다. 환자들도 그런다. “이제 먹고 살만하니까 몹쓸 병에 걸렸어요”라고 인생졸업식에서 말한다.

조실부모(早失父母)한 형제가 있었다. 형님은 15살이나 어린 막내 동생을 아들처럼 애틋하게 끼고 살아왔다. 애지중지하던 동생이 간암에 걸려 환갑도 못 채우고 먼저 떠나자, 형님은 먼발치에서 소리 없이 그렇게 흐느꼈다. 우리 가족도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갑자기 돌아가셨을 때, “이제 막내딸 시집보내고 살만하니까 돌아가셨어요”라며 구슬피 울었다.
열심히 사는 법만 배우다보면, 어느새 때가 이미 늦어버리기도 한다. 죽음만큼 확실한 것도 없지만, 죽음의 시간만큼 불확실한 것도 없지 않은가.

아무 스스럼없이 “내일 또 뵙겠습니다”라고 말할 때가 좋은 시절이다. 권투선수가 케이오 패를 당하고 만신창이가 되어 링에서 내려오는 것처럼, 환자들은 화려한 인생의 무대에서 내려와 호스피스 병동으로 속속 들어온다. 두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말이다. 더 이상의 휘황찬란한 미래는 없다. 그러나 현명한 사람들은 짧게 남은 삶의 양에 그리 집착하지는 않았다.

나는 그들이 차가운 임종실에서조차 아름다운 ‘오늘’을 만들어 내놓고 떠나는 것을 보았다. 남은 시간을 위해 영화에서 나오는 거창한 버킷 리스트를 만들지는 않았다. 인생을 후회하며 통탄에 빠지는 사람도 없었다. 살아 온 모습 그대로 그저 평범하고 따뜻한 오늘을 보내고 싶어 했다. 머리가 희끗해지면 염색을 하고 싶어 했고, 통증이 조절되어 식욕이 당기면 갓 튀겨서 낸 쫄깃쫄깃한 탕수육을 먹고 싶어 했다. ‘남아 있을 삶의 양’에 연연하기 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집중하면서 행복해 했다.

복희 할머니한테는 평생 속만 썩인 둘째 아들이 있었다. 자기 일을 착실히 하며 사회적으로 성공한 큰 아들에 비하면 남 보기 부끄러워 말도 못 꺼낼 정도였다. 나쁜 일에 휘말려 구치소에도 몇 번 갔다 왔고 아내를 때려 이혼도 당했다. 몇 년째 소식이라고는 없었던 둘째 아들이 어머니가 위암에 걸렸다는 소식을 듣고 드디어 찾아 왔다. 복희 할머니는 “내가 암에 걸렸다는 것보다 네가 돌아온 것이 정말 기쁘다”라며 초췌한 아들을 포근히 안아 주었다.

기껏 한 달 밖에 살 수 없는 호스피스 병동의 환자들도 내일이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다는 병동 밖의 사람들과 똑같은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살아낸다. 내일이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지낼 수 있다는 것은 헤아릴 수 없이 수없이 많은 밤을 하얗게 홀로지샌 뒤에 얻은 수 있는 마음의 평화이리라.

우리도 한번쯤은 호스피스 환자처럼 억지로 미래의 죽음으로 찾아가서 ‘남겨진 시간들’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해 볼 필요가 있다. 이럴 때는 초등학교 때 읽은 크리스마스 동화책의 구두쇠영감 스쿠루지 이야기가 제격이다. 크리스마스 이브, 인색하고 악명 높은 스쿠루지에게 7년 전에 죽은 동업자인 말리유령이 찾아온다. 말리는 스쿠루지에게 과거, 현재, 미래를 보여줄 유령들이 찾아 올 것이라 한다. 한평생을 오로지 돈 모으는 일에만 집중한 스쿠루지였다. 그는 아무도 자신의 죽음을 슬퍼하지 않는 미래의 모습을 보고 악독했던 지난날과 현재의 삶을 반성한다. 구두쇠 스쿠루지가 나누고 베푸는 새로운 삶으로 살아가게 한 인생의 전환점은 바로 먼저 찾아간 ‘내일의 죽음’이었다.

어려움을 극복하고 성공한 사람들은 죽도록 힘들었던 그 어려움이야말로 오늘날의 나를 있게 한 원동력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시간 순서상으로 우리는 ‘죽음’이라는 최고로 어려운 순간을 인생의 마지막에 경험한다. 나를 변화시킬 수 있는 어려움을 꼭 마지막에 마주 할 필요는 없다. 스쿠루지처럼, 또 나의 환자처럼 두려움 없이 먼저 찾아 갈 수 있어야 한다. ‘삶과 죽음’은 물과 기름같이 도저히 섞일 수 없을 것 같지만, 적당히 어우러지면 이 순간이 달라진다. 죽음을 통해서 삶을 변화 시킬 수 있다면 그것이 죽음의 진정한 의미일 것이다.

인생은 목적지가 아니라 여행이다. 호스피스의사로서 한 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그 여행이 아무런 예고 없이 그리고 언제나 생각하던 것보다 빨리 끝난다는 것이다. 마지막을 염두에 두지 않고 살면 한번 뿐인 내 인생이 원하지도 않는 자리에서 뚝 멈춰 버릴 수도 있다. 영원히 있을 것 같은 내일이라는 재앙에서 벗어나는 방법은 살아감 속에서 죽어감의 흔적이 묻어나야 한다. 내일이라는 것이 그 누구에게도 완벽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다는 것을 알면, 오늘 그대가 사랑하는 사람에게 멋모르고 거칠게 한 말이 마지막 일수도 있다는 것을 절대로 잊지는 않을 것이다.
현명한 그대여! 오지도 않을 비겁한 내일을 위해 오늘의 행복을 너무 많이는 양보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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