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나운서 손석희의 '지각인생'
글쓴이 : 이호수   날짜 : 04-11-26 13:18  
조회 : 7,882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최근 인터넷 까페나 블로그를 중심으로 ‘손석희의 유학생활’ 혹은  ‘지각 인생’이라는 제목의 글이 퍼지고 있다. 아나운서 손석희씨가 직접 썼다는 이 글은 늦은 나이에 유학을 결심하거나, 진로를 바꿔 새 출발을 하려는 네티즌들에게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손 아나운서에게 확인한 결과, “본인의 글이 맞다”는 답변을 해왔다. 이 글은 바로 그가 지난 97년부터 만 2년간 미국 미네소타주립대 대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의 경험을 적은 것으로, 월간중앙 2002년 4월호 ‘내 인생의 결단의 순간’ 시리즈에 기고했던 글.

손 아나운서는 이 글에서 “나이 마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미국으로 ‘막무가내식 자비유학’을 떠났다”고 이야기를 시작했다. “기왕 늦은 인생, 한번 저질러 보자”로 심보로 시작한 공부라면서.

지적이고 세련된 이미지로 ‘대학생들이 가장 닮고 싶은 언론인 1위’에 오른 손석희 아나운서지만 불혹의 나이에, 그것도 만리 타향에서 겪는 유학생활은 그리 녹록하지 않았나 보다. 

그는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고 말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학생들과 경쟁하기위해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 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가능했던 졸업.

그는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면서도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고 말했다.

그것은 바로 ‘절실함’.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 글을 읽은 네티즌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이들은 자신도 ‘지각인생’이라며 글을 읽고 힘을 얻었다고 고백했다.

아이디가 ‘hoilss’인 네티즌은 “뒤늦게 공부하고 싶어서 무작정 마누라 얘들 데리고 왔지만, 너무 힘들어 포기하고 싶고 울고 싶던 차에 인터넷에서 우연히 이 글을 보게 됐다”면서 “잘난 석사학위 보다 내가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 나는 잊고 있었다. 손석희씨에게 고맙다. 나도 끝까지 뛰겠다”고 말했다.

‘동이’는 “서른살은 너무 늦다고 이제 공부해서 어디에 써 먹을 거냐고 주위에서 면박 주며 시집이나 가라고 했지만 그래도 지금이 아니면 안 될 것 같아서 고민하던 저에게 와 닿는 얘기”라고 말했다.

‘하로’는 “수능을 치른 고3으로서 폐인처럼 놀기만 했던 일주일을 돌아보게 하는 글”이라고 소감을 적었고, ‘모나’는 “앞날에 대해 고민하던 중에 읽었다. 아직 확실히 정하진 않았지만 내가 좋아하는 것이 뭔지 진지하게 생각하게끔 해준 글”이라고 말했다.


다음은 손석희씨의 글 전문

남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몰라도 나는 내가 지각인생을 살고 있다고 생각한다. 대학도 남보다 늦었고 사회진출도, 결혼도 남들보다 짧게는 1년, 길게는 3∼4년 정도 늦은 편이었다. 능력이 부족했거나 다른 여건이 여의치 못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모든 것이 이렇게 늦다 보니 내게는 조바심보다 차라리 여유가 생긴 편인데, 그래서인지 시기에 맞지 않거나 형편에 맞지 않는 일을 가끔 벌이기도 한다. 내가 벌인 일 중 가장 뒤늦고도 내 사정에 어울리지 않았던 일은 나이 마흔을 훨씬 넘겨 남의 나라에서 학교를 다니겠다고 결정한 일일 것이다.

1997년 봄 서울을 떠나 미국으로 가면서 나는 정식으로 학교를 다니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남들처럼 어느 재단으로부터 연수비를 받고 가는 것도 아니었고, 직장생활 십수년 하면서 마련해 두었던 알량한 집 한채 전세 주고 그 돈으로 떠나는 막무가내식 자비 연수였다. 그 와중에 공부는 무슨 공부.  학교에 적은 걸어놓되 그저 몸 성히 잘 빈둥거리다 오는 것이 내 목표였던 것이다. 그러던 것이 졸지에 현지에서 토플 공부를 하고 나이 마흔 셋에 학교로 다시 돌아가게 된 것은 뒤늦게 한 국제 민간재단으로부터 장학금을 얻어낸 탓이 컸지만, 기왕에 늦은 인생, 지금에라도 한번 저질러 보자는 심보도 작용한 셈이었다.

미네소타 대학의 퀴퀴하고 어두컴컴한 연구실 구석에 처박혀 낮에는 식은 도시락 까먹고, 저녁에는 근처에서 사온 햄버거를 꾸역거리며 먹을 때마다 나는 서울에 있는 내 연배들을 생각하면서 다 늦게 무엇 하는 짓인가 하는 후회도 했다. 20대의 팔팔한 미국 아이들과 경쟁하기에는 나는 너무 연로(?)해 있었고 그 덕에 주말도 없이 매일 새벽 한두시까지 그 연구실에서 버틴 끝에 졸업이란 것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때 나는 무모했다. 하지만 그때 내린 결정이 내게 남겨준 것은 있다. 그 잘난 석사 학위? 그것은 종이 한장으로 남았을 뿐, 그보다 더 큰 것은 따로 있다. 첫 학기 첫 시험때 시간이 모자라 답안을 완성하지 못한 뒤 연구실 구석으로 돌아와 억울함에 겨워 찔끔 흘렸던 눈물이 그것이다. 중학생이나 흘릴 법한 눈물을 나이 마흔 셋에 흘렸던 것은 내가 비록 뒤늦게 선택한 길이었지만 그만큼 절실하게 매달려 있었다는 방증이었기에 내게는 소중하게 남아있는 기억이다. 혹 앞으로도 여전히 지각인생을 살더라도 그런 절실함이 있는 한 후회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최현정 동아닷컴기자 phoeb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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